
비판은 필요하다. 혐오는 필요한가?
축구대표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를 하면 가장 먼저 감독이 비판의 중심에 선다. 최근 홍명보 감독 역시 전술과 선수 기용, 경기, 운영 등을 둘러싸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은 스포츠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판은 사람을 향한 조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감독의 이름보다 조롱하는 별명이 더 많이 보이고, 경기 내용보다 인신공격이 더 큰 관심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가족까지 언급하거나,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표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감독은 공인의 위치에 있고, 국민의 기대를 받는 자리인 만큼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경기력에 대한 냉정한 분석도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과 혐오는 같은 말이 아니다.
비판은 행동과 결과를 향한다.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문제를 지적한다. 반면 혐오는 사람 자체를 공격한다. 설명보다 낙인을 남기고, 토론보다 조롱을 확산시킨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문화가 이제는 너무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조롱하는 게시물은 빠르게 퍼지고, 자극적인 표현일수록 더 많은 반응을 얻는다. 공감보다 조롱이, 성찰보다 분노가 더 쉽게 소비되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닐까?
실수한 사람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이 점점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자유는 상대를 침묵시키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하기 위한 권리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강한 비판은 공동체를 발전시키지만, 혐오는 공동체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홍명보 감독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쁜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홍감독이 이끄는 팀의 경기 결과와 홍감독의 지도력으로 판단 받으면 된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한 가지는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정말 축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새 한 사람을 조롱하는 일 자체를 즐기는 문화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감독은 바뀔 수 있다. 성적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결국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경기 결과일지도 모른다.




